일상

천방지축 어리둥절 주간일기 3주차 (걷기 대장정 : 서울시청 & 명동 걷기)

리형섭 2022. 6. 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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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리형섭입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야~ 세월 가도 모르는 게 사랑이야~ 어느덧 네이버 주간일기도 3주차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일주일에 한번 쓰는 일기를 위해 이번에는 어디를 걸어야 하나 고민이 많습니다. 

 

이번 주에는 굵은 빗방울이 아주 시원하게 한번 내려주고, 바람도 어찌나 세게 부는지 바람과 함께 사라질 뻔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주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서울로 나가 신나게 걸어보았습니다. 역시 서울이야말로 곳곳에 숨은 이야기가 많은 곳 아니겠습니까!

 

일단 집을 나서기 전에 저희 집 멍멍이 리톨희랑 인사를 하고 나갑니다. 집을 나서야 하는데 멍멍이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흑흑

 

시청역에 내려 서울의 중심, 서울시청 광장으로 나왔는데요. 마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듯, 많은 사람들이 도란도란 광장에 앉아 여유로운 주말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광장 풀밭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되게 이질적인 감정을 느꼈는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광장에 앉아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참 많았다는 게 떠올랐어요. 우리에게 다시 평범한 일상이 다가와 너무 기쁘네요.

 

6월은 보국 보훈의 달 아니겠습니까? 당장 어제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었죠.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대한민국을 지키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나저나 서울시청은 건물이 2개가 있잖아요. 하나는 딱 봐도 옛날에 만든 건물이고, 하나는 딱 봐도 현대에 만든 건물이죠. 서울시청 건물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요. 문제는 서울의 행정을 담당했던 당시 경성부청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1926년 지금의 서울시청 부지에 경성부청을 짓게 됩니다. 몇 년 뒤면 곧 100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건물이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일제의 수탈을 담당한 곳이기도 한 가슴 아픈 건물이기도 합니다.

 

특이한 건, 보통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지은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서울시청 역시 일본인 건축가의 설계로 만들어졌는데 '장연채'라는 한 조선인도 설계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http://m.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tXiMkz3pjElrvSdHaZifZrexyG2GaO1rqF4BNXdD1EsWItGQ4qKdroEGGnHafTTF.cha-was02_servlet_engine2?nttId=3710&bbsId=BBSMSTR_1006&pageUnit=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

 

어쨌든 2012년 지금의 서울시청을 지으면서 현재는 서울 도서관이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있으시면 안에 들어가서 구경해 보세요. 나름 재밌어요.

 

 

서울시청 맞은편에는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특급 호텔, 더 플라자 호텔이 있는데요. 여기가 아주 근본 있는 호텔로 유명합니다. 호텔에서 보이는 덕수궁 뷰가 아주 일품인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더 플라자 호텔은 1976년 개관했는데요. 사실 조선시대 때는 이 자리에 '지천사'라는 사찰이 있었습니다. 덕수궁 바로 앞에 있었던 만큼 지천사의 역할 역시 아주 엄중했는데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바로 조선의 왕이 직접 하늘에 제례를 지냈던 곳입니다. 아주 근본 있는 자리에 호텔이 들어선 것이죠.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당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과 낭만을 논하는 사교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해방과 전쟁을 거쳐 한화의 더 플라자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더 플라자 호텔을 지나 을지로입구 쪽으로 걷다 보면, 수많은 빌딩 가운데 회색빛의 건물이 하나 눈에 띕니다. 이 건물은 바로 (구)미국문화원인데요. 무려 1938년에 지어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건물입니다.

 

1938년 일제강점기 당시 이 건물이 지어진 목적이 조금 가슴 아픈데요. 미쓰이(三井)물산주식회사의 경성지점으로 지어졌습니다. 미쓰이 물산은 2022년에도 여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하나인데요. 당시 조선을 수탈하며 많은 이득을 챙겼습니다. 

 

해방 후 시간이 흘러 1985년에는 미국문화원으로 쓰였는데요. 제5공화국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의 현장이 바로 이곳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비롯해 미군기지와 미국 정부 기관은 치외법권으로 분류되어 우리나라 경찰이 어찌할 수 없는데요. 1985년 당시 대학생들이 미국문화원을 점거했을 때 역시 우리나라 경찰이 치외법권인 미국문화원에 들어갈 수 없어 난처했다고 하네요.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울시청을 떠나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을지로 일대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의 본점이 있는데요. 

 

사실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백화점이 있던 곳이었다는 사실! 무려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백화점의 메카!

 

롯데백화점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롯데는 한국 기업인가? 일본 기업인가? 제가 예전에 일본 친구들과 롯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많은 일본 친구들이 롯데가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ㅎ_ㅎ

 

올해 명동 애플스토어가 개장했지요. 규모가 아주 으리으리합니다. 나름 애플 팬으로서 애플 매장이 하나하나 늘어만 가는 게 조금 기쁘긴 합니다. 근데 너무 비싸다능!

 

명동역에 있는 롯데 영플라자! 이 건물 역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인데요. 롯데 영플라자의 100년 전 이름은 바로 조지아 백화점!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명동에 아주 크게 영업을 하던 일본의 조지아 백화점이었습니다. 내부는 완전히 다를지언정 겉모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백화점 중 가장 근본이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이곳 역시 숨어 있는 이야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사실 이 건물은 누가 봐도 옛날 감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물인데요.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미쯔코시 백화점이 있던 곳입니다. 사실 건물 자체도 미쯔코시 백화점 건물 그대로 쓰고 있어요.

 

미쯔코시 백화점은 일본에 가시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백화점 중 하나인데요. 일본 말고도 대만에서도 미쯔코시 백화점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역사가 깊은 백화점 중 하나인 거죠. 

 

당시 명동은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백화점을 비롯해 은행, 우체국, 전차까지 없는 게 없던 동네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명동은 메이지쵸(明治町), 충무로는 혼마찌(本町)란 이름으로 불리며 일본인들의 터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는 동네이기도 하죠.

 

조금 씁쓸한 사실은 지금도 신세계백화점에서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습니까? 근데 당시에는 남산타워가 아니라 일본 신사가 보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신사가 버젓이 보이는 그런 씁쓸함이 있었습니다.

 

명동(明洞)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기도 했는데요. 조선에 터를 잡은 중국 화교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중국 식당과 같은 상권이 발전했습니다. 

 

저도 중국어를 쪼오금 배워서 가끔 중국 서적을 찾곤 하는데요. 그때마다 명동에 있는 이 중국 서점을 가끔 들리곤 합니다. 왜 가끔이냐면 사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거덩요. 근데 정말 오프라인 감성을 느끼고 싶을 때는 이곳에 와요.

 

명동까지 왔는데 또 중국 음식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면과 다르게 도톰하니 씹는 맛이 일품인 도삭면과 양고기 덮밥! 역시 중화요리가 제일 맛있젱!

 

오랜만에 명동에 왔는데 확실히 코로나의 여파가 아주 절실히 드러나는 곳이네요. 예전에 수많은 상가와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던 명동은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네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큰길로 나오니 사람이 꽤 북적북적한 게 활기 넘치던 명동이 되살아난 느낌입니다. 골목길 상권은 완전히 죽었고 그나마 큰길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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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왔으니 명동성당에 들려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꼭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적인 측면에서 명동성당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가 꽤나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 천주교 이야기는 다음에 서울 순례길 투어와 함께 풀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명동까지 오셨으면 명동성당에 들러 잠깐 숨 좀 돌리시고 사진도 이쁘게 찍으시면 참 좋겠죠?!

 

명동성당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잠깐 말씀드리면, 이곳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명례방'으로 불리었는데요. 이곳에서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로 전례가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고,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던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에요. 

 

참고로 우리나라에 있는 몇몇 성당들이 그냥 지은 게 아니고, 그곳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지어진 곳이 꽤 많습니다. 나중에 저와 함께 그 이야기를 찾으러 가보시지요.

 

오늘의 걷기 대장정! 서울시청과 명동 일대를 열심히 걸어보았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던 밤은 이제 없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긴긴밤이 찾아왔습니다. 모두 에어컨과 함께 시원하게 보내시고, 태양볕이 너무나도 뜨겁지만, 신나는 여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걷기 대장정은 다음 주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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